
라트로이 호킨스는 메이저리그에서 21년 동안 투수로 활약했으며, 현재는 미네소타 트윈스의 불펜 코치를 맡고 있습니다. 다음은 그가 함께 뛰었던 가장 훌륭한 세 명의 리더들입니다.

톰 켈리
감독님은 사람들에게서 최선의 모습을 이끌어내는 본인의 색다른 방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만약 여러분이 그걸 감당해낼 수만 있다면 최고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걸 감당하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었죠.
감독님은 선수들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느끼게 만들 수도 있었고, 반대로 보잉 757 여객기가 된 것처럼 느끼게 만들 수도 있었어요. 감독님의 피에는 야구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감독님에 대해 특별하게 이야기하곤 하는데, 왜냐하면 제 커리어에 엄청난 영향을 주신 분이셨기 때문이에요. 저는 훌륭한 선발 투수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시즌에는 평균자책점이 6.66을 찍기도 했구요. 하지만 감독님은 제 자신에게서 보지 못했던 뭔가를 저에게서 보셨어요. 그것이 바로 그분을 놀라운 리더로 만든 점이었습니다.
감독님은 저에게 어느 정도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당시 저는 아무런 성공도 거두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 분은 모든 것을 보고 있었고, 언제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제 일을 처리하는지, 매일 어떻게 훈련하는지 지켜보셨죠. 저는 결코 지름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감독님은 저를 감독실로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계속 이 팀에 남아있게 될 거야. 계속 열심히 훈련해라. 네가 훈련을 멈추는 모습을 처음 보는 순간, 여기서 당장 쫓겨나게 될 거니깐. 내가 여기 있는 한, 너도 여기 있을거다. 그저 계속 노력하기만 하면 돼."
방을 걸어 나오면서 이게 좋은 면담이었는지 나쁜 면담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속으로 ‘이런 젠장’ 이라고 생각했죠. 감독님은 정말 올드스쿨 타입이셨고, 거침이 없었습니다.
인디애나주 개리에서 자란 덕분에저는 감독님의 거침없는 면모에 익숙해져 있었고, 오히려 그것을 발판 삼아 성장했습니다. 제가 자라면서 거쳐 간 모든 코치님들이 거침없는 분들이셨어요. 저희 어머니도 마찬가지셨구요. 그리고 감독님이 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일화도 말씀드릴게요. 감독님이 저를 불러서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 물어볼 것이 하나 있다.” 저는 늘 그랬듯이 감독실에 앉아 있었죠. 감독님이 시가를 피우면서 물어보셨습니다. “너는 불펜에서 투구하는 법을 AAA에서 배우고 싶의냐, 아니면 여기 빅리그에서 배우고 싶으냐?"
“그게 무슨 질문이세요?" 제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감독님이 말씀하셨어요 “좋아, 경기 나갈 준비를 해라.”
나머지는 여러분이 아시는 역사 그대로입니다.

더스티 베이커
감독님은 모든 사람과 교감했어요. 선수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인 것처럼 느끼게 해주셨죠.
미네소타에서 톰 켈리 감독님과 이별한 후, 저는 곧장 시카고로 가서 더스티 베이커 감독님 밑에서 뛰게 되었습니다. 감독님은 영리하고, 여러 분야에 걸쳐 박식한 분이셨어요.
컵스 시절 고향인 개리로 돌아가면, 동네 사람들 모두가 감독님이 잘 지내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자니B(Johnnie B)는 어떻게 지내? 자니B는 어때?”라고 물었습니다. (역자 주: 자니B는 더스티 베이커 감독의 본명을 친근하게 부르는 애칭입니다)
우리 동네에는 작은 구멍가게와 작은 주류 판매점이 있었는데, 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감독님은 저 주류 판매점에 가서 당신들과 함께 어울려 지낼 수도 있는 분이에요. 아마도 평생 여기서 산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사람이죠. 혹은 백악관에 가서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사람이구요.”
감독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는 그 이면에 교훈이 있었어요. 그분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 중 하나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미네소타를 떠나 시카고로 갔을 때, 시카고에는 인종차별이 심했어요. 미네소타에서는 그런 일을 겪지 않았죠. 제가 처음으로 받은 증오의 편지를 보여드리자, 감독님은 저를 감독실로 불러서 대화를 나누며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도와주셨어요.
“이봐 친구, 그 누구도 네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지 못해. 너는 실력으로 쟁취해서 여기 있는 거야. 저 사람들은 모두 너처럼 되고 싶어 하는 거야. 우리처럼 되고 싶어 하는 거지” 당시 감독님이 하신 말씀이었어요.
저에게 그것은 모든 것을 의미했어요.
제가 감독님 밑에서 경기를 안 한 지 21년이 지났지만, 요즘도 감독님께서 전화를 주십니다. 2~ 3주 전에도 안부전화를 주셨죠. “이봐 호크, 그냥 안부 차 전화했다. 코치 생활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니? 마음에 드니, 아니면 그냥 그렇니, 그것도 아니면 별로니?”
감독님을 위해 경기를 뛰는 것은 힘들면서도 쉬운 일이었습니다. 너무나 아버지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결코 감독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을 거에요. 저는 감독님을 저의 야구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트레버 호프먼
저는 트레버와 딱 1년 동안만 함께 뛰었습니다.
당시는 그의 커리어 막바지였는데, 세이브를 기록할 때마다 매번 새 야구화를 받아야 했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트레버의 스파이크를 뉴욕주 쿠퍼스타운에 있는 야구 명예의 전당으로 보내고 있었거든요.
당시 저는 빅리그에서 15년을 뛴 상태였습니다. 불펜에서 항상 리더 역할을 해왔지만, 저 자신이 그냥 한 걸음 물러서서 트레버가 어떻게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지, 그리고 우리 모두를 어떻게 대하는지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것을 알게됬죠. 트레버는 가끔씩 어린 선수들에게 엄하게 대하기도 했지만, 그러고 나서는 그들을 끌어안고 사랑을 베풀어주었습니다.
트레버는 우리가 반드시 함께 운동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만약 일요일 홈에서 낮 경기가 있는 날이면, 우리는 그의 집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의 팀으로서 함께 식사하도록 챙겼죠. 트레버는 보통 쉽게 볼 수 없는 끈끈한 동료애라는 보이지 않는 층을 만들어냈습니다. 언제나 사람들을 보살폈구요.
호프먼은 먹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엄청 많이 먹는 사람이었어요. 파스타가 가득 담긴 접시를 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만약 다른 사람이 스테이크와 감자를 가지고 있다면 그 스테이크를 손으로 덥석 쥐고 한 입 베어 문 뒤 다시 자기 접시에 올려놓곤 했습니다.
참 독특한 경험이자,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들었죠.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한 리더이고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사람이다. 그러니 그저 자기 할 일을 하도록 두자.’
https://www.nytimes.com/athletic/7329859/2026/06/04/latroy-hawkins-mlb-leadership-twins/?unlocked_article_code=1.nlA.uNrK.3OK4gH6PhiX2&smid=ta-android-share
LaTroy Hawkins: The 3 best leaders I played with in my 21-year MLB career (Gift Article)
LaTroy Hawkins pitched in the majors leagues for 21 years, including for the Minnesota Twins, Chicago Cubs and Milwaukee Brewers.
www.ny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