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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힘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항상 의식을 치뤘던 호세 발베르데 (사진출처: 디 애슬래틱)

호세 발베르데는 자신만의 의식을 철저히 지켜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과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마무리 투수였던 그는 마운드로 달려 나가기 전, 불펜에서 입안 가득 물을 머금은 뒤 왼쪽과 오른쪽으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뿜어내곤 했어요. 대충 하는 법은 없었죠. 그리고 나선  글러브로 허벅지를 탁 치고, 모자를 오른손으로 옮겨 쥔 뒤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진정한 도전은 그다음에 찾아왔어요. 단 하나의 선도 밟지 않고 내야 전체를 가로지르는거였죠. 단순히 파울 라인뿐만이 아니라, 모든 선이 대상이었습니다. 외야에 깎인 잔디 줄무늬, 석회 가루로 그려진 경계선, 심지어 잔디와 흙이 만나는 이음새까지 포함됬어요.여러가지 선들로 이루어진 야구장이라는 미로 속에서, 발베르데는 마치 각 선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2011년 메이저리그 전체 세이브 1위를 기록했어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야구계에는 발베르데와 같은 선수들이 많습니다. 본인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엘리트 운동선수들이지만, 다른 곳에서라면 눈총을 받을 법한 기벽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죠. 타이거스 출신의 사이영상 수상자 저스틴 벌랜더는 선발 등판 전날 밤마다 똑같은 타코벨 메뉴를 먹는 루틴을 고수했습니다. 토마토를 뺀 크런치 타코 슈프림 세 개, 치즈 고르디타 크런치 하나, 그리고 역시 토마토를 뺀 멕시칸 피자 하나였죠.  

MVP 출신인 제이슨 지암비는 슬럼프에 빠져서 허우적댈때, 행운을 위해 황금색 라메 소재의 호랑이 무늬 티팬티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효과가 너무 좋아서, 양키스 동료들이 조용히 빌려 입기 시작할 정도였어요.

이 선수들 중 누구도 정신이 나간게 아니에요. 오히려 과학적 근거에 따르면, 매우 영리한 행동을 하고 있는거였죠.

징크스의 사나이, 웨이드 보그스 (사진출처: 게티이미지)

1. 불확실성의 간극

야구는 세계 최고의 타자들조차 열 번 중 일곱 번을 실패하고도 명예로운 은퇴를 선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주요 스포츠입니다. 투수들은 공을 던지지만, 그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거의 통제권을 갖지 못해요. 완벽한 위치에 꽂힌 패스트볼이 빗맞은 안타가 되기도 합니다. 실투가 된 커브볼이 2루타로 연결되기도 하구요.

이러한 무작위성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6개월 동안 펼쳐지는 162경기 시즌 내내 작동합니다.  기이한 습관이 자라나기에 충분한 시간이죠.

인류학자 조지 그멜치는 이를 야구에 최초로 대입했습니다. 그는 트로브리안 제도의 어부들이 잔잔한 내부 석호에서 낚시할 때는 아무런 의식을 행하지 않지만, 위험한 먼바다로 나갈 때는 정교한 의식을 치르는 사실을 선수들에 대입시켰습니다. 그멜치의 설명에 따르면, 야구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해요. '먼바다'와 같은 포지션인 타자와 투수들은 끊임없이 의식을 만들어냅니다. 반면, 맡은 임무를 90% 이상 성공해 내는 야수들은 의식을 거의 행하지 않죠. 이렇듯 의식은 불확실성과 함께 피어오르고 가라앉습니다.

슬럼프 탈출을 위해 티팬티를 입었던 제이슨 지암비 (사진출처: 게티이미지)

2. 뇌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

오랫동안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의식을 일종의 자신감 조작, 즉 선수들이 믿기 때문에 실제로 그 효과가 나타나는 플라시보 효과라고 취급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과학은 그보다 훨씬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어요.

​2017년의 한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의식은 단순히 기분을 좋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실패에 대한 뇌의 반응 방식까지 변화시킵니다. 일주일 동안 특정 의식을 수행한 참가자들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뇌의 신경 반응이 눈에 띄게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어요. 뇌가 말 그대로 좌절을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실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타자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극심한 고통이 늘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좌절을 흡수하는 거에요.

2023년 한 연구에선, 의식화된 행동이 특히 경쟁적인 압박 속에서 자기 통제력을 향상시키며, 판돈이 커질수록 그 효과가 강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연구는 발베르데의 선 밟지 않기 루틴을 보면서 희안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생각을 고쳐먹게 만들었어요. 압박감이 기괴해질수록, 의식은 자기의 존재 가치를 증명합니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메커니즘은 B.F.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 형성이며, 이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작동합니다. 한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기 전 십자가를 만졌고 안타를 쳤다고 해봅시다. 뇌는 이를 기록해요. 다음에 또 십자가를 만진 후 안타를 치게 되면, 이러 행동이 의식이 됩니다. 이제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처럼 느껴지죠.  

스키너는 비둘기를 통해 이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비둘기의 행동과 상관없이 무작위 간격으로 보상을 주면, 비둘기는 그 보상이 자신의 행동 덕분에 나온다고 믿으며 정교하고 특정한 움직임을 만들어내요. 그는 이들을 '미신을 믿는 비둘기'라고 불렀습니다. 야구는 지난 150년 동안 이런 비둘기들을 만들어왔구요.

야구 버전의 의식이 특히나 강력한 이유는, 인간의 강화 계획이 이 순환을 유지하도록 거의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선수들이 의식을 행할 때마다 안타를 치는 건 아니에요. 가끔씩 치죠. 슬롯머신에서 발을 떼기 어렵게 만드는 메커니즘과 동일한, 이런 '간헐적 강화'는 가장 강력한 종류의 자극입니다. 벌랜더가 타코벨을 계속 먹은 이유는 매 경기 효과가 있어서 그랬던게 아니에요. 그게 효과가 없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타코벨 매니아 (사진촐처: 게티이미지)

​3. 의식은 모든 것보다 오래 남습니다

이게 바로 '의식'과 '루틴'을 구분 짓는 세부 사항입니다. 루틴은 유용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에요. 반면 의식은 멈추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하는 일입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기 전 의식을 제거하면 실제로 불안감이 증가하고 자기 효능감이 감소한다고 해요. 의식이 방해받은 선수들은, 신체적인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지지대가 사라졌기 때문에 더 나쁜 성적을 냈습니다.

뉴욕 메츠와 NFL 자이언츠에서 활동한 스포츠 심리학자 조나단 페이더는 이 간단한 관찰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정립했습니다. 인간은 불확실성에 깊은 불안을 느껴요. 100마일 슬라이더를 상대하는 야구 선수는 공을 맞힐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없앨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매 투구 전 의식을 행하는 것뿐이죠. 의식이  불확실성 자체를 바꾸지는 못하거든요. 하지만 몸과 마음이 그 불확실성을 마주하는 방식을 바꿉니다. 그게 만들어내는게 바로 '확실성이라는 환상'이에요. 그리고 그 환상은 실제로 제 몫을 다하고 있다는게 밝혀졌습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이 야구 선수들이 특히 비합리적이고, 미신을 보상으로 삼는 습관의 생명체라는 식의 교훈으로 흐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 연구에 따르면 더 흥미로운 것들을 알 수 있어요. 의식은 논리의 실패가 아닙니다. 논리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죠. 모든 스프레이 차트를 연구하고, 투수의 릴리스 포인트를 암기하며,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더라도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할 수 있는게 야구입니다. 의식이 선수들에게 주는 것은 통제력이 아니에요. 내일 다시 타석으로 걸어 나갈 수 있게 해주는, 마치 나에게 통제력이 있는 것 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근거 없는 자신감입니다.

타코가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쩌면 그게 본질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의 올스타 스티븐 콴이 말한것 처럼 말이에요.  "효과가 있다면 이상한 게 아닙니다."


https://www.nytimes.com/athletic/7259106/2026/05/07/baseball-rituals-mlb-neoroscience/?unlocked_article_code=1.g1A.eQpF.FbbUhNvzj9c3&smid=ta-android-share

Thongs, Taco Bell and the neuroscience of baseball’s weirdest rituals (Gift Article)

Sports psychologists once treated rituals as a confidence trick — a placebo. The science has gotten more interesting than that.

www.ny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