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바닥에 도랑을 파고 나서야, PJ 풀린은 자신이 야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2020년, 그는 마이너리그 선수이자 건설 노동자였으며, 콜로라도 로키스와 배넌 커스텀 빌더스의 직원이었습니다. 그날 작업은 케이프 코드 해안가의 좁은 도로에서 진행됬는데, 그곳은 주로 피서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이었어요. 이것이 메이저리그로 가는 여정의 끝은 아니었지만, 그 여름날에는 마치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풀린과 그의 왼팔은 언젠가 메이저리그로 갈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왼팔이 다른 목적을 위해 쓰였죠. 풀린은 어떤 집의 왼쪽 담장과 울타리 사이 1피트 남짓한 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간 뒤, 왼팔로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결과물은 자신의 땀으로 가득 찬, 깊이 2피트 정도되는 도랑이었어요. “조금이라도 돈을 벌고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해야 했던 일입니다." 풀린이 말했습니다.
현재 워싱턴 내셔널스의 클럽하우스에서 함께하는 동료들은, 대부분 그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하위 라운드 지명 선수들이에요. 워싱턴 내셔널스와 LA 다저스는 같은 리그에서 같은 야구를 합니다. 그러나 다저스가 4억 달러 규모의 로스터를 경험과 명성으로 채우는 동안, 내셔널스는 한때 꿈을 이어가기 위해 추가 수입원을 찾아야 했던 풀린 같은 몽상가들과 악바리들로 팀을 채우죠.
구속이 빠르지 않은 이 좌완 투수는 거의 8년전 11라운드에서 로키스에 지명되었습니다. 수많은 하위 라운드 선수들처럼, 풀린은 12만 5천 달러라는 소박한 계약금을 받고 메이저리그라는 꿈을 향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그는 우버 운전사, 야구 코치, 건설 노동자(2020년 마이너리그 시즌이 취소되면서 1년간 일했습니다), 도어대시 배달원, 다시 야구 코치, 그리고 몇 주 동안 아마존 직원으로 일해야만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건설 일은 그나마 가장 나은 편이었습니다. 사장님이 절친의 아버지였고, 회사에서 작업일정을 풀린 스스로 정하게 해줬거든요. 또한 아주 중요한 왼쪽 팔꿈치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지붕 작업은 아예 시키지도 않았습니다. 풀린은 주로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옮기며, 현장을 오가며 도구를 전달했어요.
“하지만 그날은 집 주변에 도랑이 필요했고, 누군가는 그걸 파야 했습니다.” 풀린이 말했습니다. 그는 당시 동료들이 자신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는걸 강조했죠. “일자리가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정말 필요했거든요. … 하지만 동시에 ‘빨리 야구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워싱턴에서 잭 리텔은 예외적인 존재입니다. 리텔의 올시즌 연봉 700만 달러는 다저스에서는 15위이지만, 내셔널스에서는 팀 내 최고 연봉자에요. 다른 팀메이트들에게 있어서 그는 꿈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지금은 수염이 무성한 베테랑으로서 선발진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작업용 의자에 앉을 때 몸을 웅크려야 했던 6피트 4인치짜리 20살 청년이었습니다.
리텔은 그 의자를 싫어했고, 의자가 굴러가지 않게 하기 위해 발을 고정해야 하는 것도 싫어했습니다. 옆에 있던 화이트보드도 싫었고, 거기에 적힌 달성하기 어려운 할당량도 싫었죠. 본인이 쓰던 보석 세공용 확대 안경도 싫었고, 그것을 통해 보이는 것들도 싫었습니다. 하지만 리텔은 2013년 11라운드에서 지명되어 10만 달러에 계약한 선수였고, 이는 2024년 마이너리그 단체협약을 통ㅅ내 선수들이 더 높은 급여와 무료 숙소를 받기 훨씬 이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리텔은 한 겨울 동안 6개의 헤드가 달린 자수 기계를 다루는 일을 했어요. “재밌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문이 많아지면?” 리텔이 말을 흐렸습니다. “출근했는데 화이트보드가 가득 차 있으면 정말 최악이었어요."
실과 바늘은 끊임없이 끊어졌습니다. 어떤 날에는 디자인 작업 도중 기계 전체가 멈춰버리기도 했죠. 가장 바쁜 날, 즉 근무 시간 안에 후드티 200장이나 모자 150개를 완성해야 하는 날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십 개의 바늘을 뒤져야만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 그의 손은 마치 잭슨 폴락의 그림처럼 보였어요.
“사람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게 바로 그런 일입니다." 리텔이 말했습니다. “지루한 일을 계속하는데 기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그러다 실수로 손을 바늘에 찌르게 되면 진짜 돌아버려요."
다음 오프시즌, 같은 지역에 사는 한 마취과 의사가 리텔이 사냥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남자는 농장을 가지고 있었고, 코요테 문제와 함께 약간의 여윳돈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리텔은 매일 밤 10시쯤 그곳으로 가서, 그 의사의 소총과 열화상 조준기를 들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나선형 계단을 거쳐 농장을 내려다보는 탑에 올라가서, 코요테 4~5마리를 잡았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어둠속에서 아무것도 쏘지 못한 채 앉아 있다가 60달러를 받고, 다가올 오프시즌 훈련을 기다렸죠.
리텔는 이게 훨씬 나은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1년짜리 일이었죠. 다음해 겨울 아내가 대학을 졸업했고, 리텔도 더이상 새벽 2시에 화약 냄새를 풍기며 집에 돌아올 필요가 없었습니다.
적어도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그는 집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겪는 스트레스를 더 이상 공유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냥을 덜 자주, 그리고 무료로 하게 되었어요. “아니, 달리 뭐 할일이 있었겠어요?” 리텔이 반문했습니다.

거스 발랜드와 그의 형 루이스가 메이저리그에서 중요한 순간을 맡는 불펜 투수가 되기 전, 그들은 각각 14라운드와 15라운드 지명 선수였습니다. 형제는 새벽 5시에 일어나 8시 30분까지 운동을 하고, 이후 9시부터 5시까지 아버지의 석고보드 회사에서 일했죠.
그 결과, 4월 초 원정 클럽하우스 본인 라커 앞에 선 거스는, 좋은 석고보드 작업의 세부 사항을 설명하는 데 6분이나 필요했습니다. 그는 두 단계를 설명하다가 중간에 하나를 빠뜨린 것을 깨닫고 다시 채워 넣었어요. 물통을 채우고, 점검을 하고, 벽의 불량 부분을 잘라내고, 듀라본드를 바르고, 나사를 처리하고 퍼티를 바르고, 각 작업에 두세 번씩 덧칠하고, 표면을 샌딩하는 일을 어떤 순서로든간에 진행했죠. 어릴 때 익힌 순서를 그대로 억하고 있었습니다. 거스는 각도나 모서리 테이프 같은 정교한 작업에 더 능했고, 루이스는 석고보드를 나르고 이음매를 테이핑하는걸 더 잘했다고 합니다.
둘 다 전문가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고, 함께 일하던 독립리그 선수 친구만큼도 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일에는 쉬운 날이란 없습니다.” 발랜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현장 노동자들은 진짜 존경받을만한 분들이에요."
피로는 일상이었고, 나쁜 날은 흔했어요. 좋은 석고보드 작업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일하고 좋은 팀에서 일하며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장점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대안도 없었구요.
마침내 밀워키 브루어스가 룰5 드래프트에서 그를 지명했을 때, 거스 발랜드는 작업화를 벗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다시 야구에 집중할 수 있었고, 훈련에 몰두하며 자신의 경기력에서 거친 부분을 다듬을 수 있었어요. “두 번째 직업이 있으면 시간이 너무 한정적이어서 큰 것들만 하게 됩니다.” 거스 발랜드가 말했습니다. “시간이 많아지면 작은 것들까지 제대로 다듬을 수 있죠”
다른 하위 라운드 선수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거스 발랜드는 처음으로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오프시즌에 제구력을 세심하게 다듬었습니다. 브래드 로드(18라운드, 12만 5천 달러 계약금)는 워싱턴 개막 로스터에 들기 전 오프시즌에, 홈디포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날랐어요. 다음해 겨울에는 집에서 아내와 시간을 보내며 프로젝트를 하고, 변화구를 개선했습니다. 팩스턴 슐츠(14라운드, 12만 5천 달러)는 유타의 눈 속에서 택배를 배달하던 일을 그만둘 만큼 돈이 모이자, 움직임 전문가와 함께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더 자유롭게 움직이고, 몸이 더 튼튼해졌다고 느끼고 있어요.
“아파트 단지마다 다니며 주소를 찾느라 애를 먹으며 배달했습니다.” 슐츠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꿈을 계속 쫓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어'라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슐츠는 아내와 딸과 보낼 시간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런 것들의 가치를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느끼고 있어요. 예전처럼 함께하지 못했던 시절을 기억하기 때문에, 기능한 한 가족과 함께 있고 싶어하구요. “사소한 것들에 정신이 팔리지 말자.” 슐츠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런 여정을 떠올리게 하는 작은 신호들은 항상 존재하며, 그 길을 걷는 선수들도 계속 생겨납니다. 미첼 파커(5라운드, 10만 달러)는 약간의 돈을 벌고 실제 직업을 경험하기 위해 식료품점 퍼블릭스에서 일했습니다. 일정이 맞지 않아 3주 만에 그만뒀지만, 지금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소중히 여기고 있죠.
마일스 마이콜라스(7라운드, 12만 5천 달러)는 한때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있는 사립학교에서 청소부로 일했으며, 한 학생이 과학실에서 토했던 일을 제외하면 “그렇게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가 더 좋았어요. 돈을 계획적으로 쓰는 것도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그는 이후 받는 모든 급여를 소중히 여기고 있어요.
“그때 마이너리그에서는 숙소 비용도 직접 내야 했고 수입도 적어서, 상당히 많은 돈을 자비로 부담해야 했습니다.”라고 마이콜라스는 말했습니다. “2012년, 제가 콜업된 해는 반드시 콜업돼야 했던 해였습니다. 그 겨울이면 정말 돈이 바닥날 상황이었거든요.”
“지금은 선수들이 생활 가능한 임금을 받는 것에 우리가 기뻐해야 한다는 게 이상하긴 합니다.” 리텔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어느 정도 고생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어요. 마이너리그에서는 다 같이 그 상황을 겪기 때문에 동료들과 정말 끈끈해집니다.”
때로는 그런 기억이 급여보다 더 강하게 떠오르기도 합니다. 리텔은 이번 봄에 아내가 작은 자수 기계를 구매했을때 그것을 실감했습니다.
“PTSD가 올 것 같았어요.” 리텔이 말했습니다. “그 소리 말이에요. 계속 ‘둥둥둥둥’ 하는 소리요. 정말 길고 힘든 오프시즌이었습니다.”

이런 선수들에는 커티스 미드같이 지난 1년 동안 세 팀을 거친 선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뉴욕 양키스가 방출하려고 했지만, 내셔널스가 트레이드로 데려온 조르빗 비바스도 있습니다. 또한 나심 누녜스(룰5 지명), 포스터 그리핀(지난해 일본에서 던진), 조이 비머(웨이버 클레임)도 있죠. 그들이 가진 짐은 경제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짐은 짐입니다.
“우리 팀 전체에 전하는 메시지는 이거에요. ‘너희가 어디에 있었든간에 지금은 워싱턴 내셔널스 선수이며, 우리는 너희를 믿는다.’ 우리는 지금 선수들이 팀 승리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셔널스 감독 블레이크 부테라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단체협약이 2026년 12월 1일에 만료되고, 마이너리그 협약이 2027년 12월 1일에 만료되는 상황에서, 리그에서 가장 젊은 팀 중 하나가 경기장 안팎에서 동시에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모습은 분명 독특할 겁니다.
도랑을 파던 날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 풀린이 이 모든 이야기 속에서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점은 하나입니다. 모든 여정이 같은 모습일 필요는 없다는 거죠. 역경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자신이 겪었던 형태일 필요는 없습니다.
“분명히 이 부분에서 야구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풀린이 말했습니다. “메이저리그든 마이너리그든, 우리는 모두 열심히 노력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프시즌에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모든 시간과 노력을 최고의 야구 선수가 되는 데 쏟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앞으로 올라오는 더 많은 선수들이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은 야구에 좋은 일입니다.”
https://www.nytimes.com/athletic/7236476/2026/04/29/nationals-players-jobs-mlb-late-draft-picks/?unlocked_article_code=1.elA.QTyr.Ct3_AuWqlwW4&smid=ta-android-share
Digging trenches, hanging drywall and shooting coyotes: How MLB’s most anonymous team made ends meet (Gift Article)
The Washington Nationals are stocked with the dreamers and grinders that had to put in extra work to keep their baseball dreams alive.
www.ny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