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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스의 영감님, 영원한 별이 되다 (Part 1)

러브매니 2026. 5. 10. 11:14

바비 콕스는 브레이브스의 성공시대를 연 레전드였습니다 (게티이미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구단은 토요일, 브레이브스의 가장 길고 지속적인 성공 시대를 이끌었으며 야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감독 중 한 명이었던 바비 콕스가 8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는 2019년 4월 발생한 대뇌졸중 이후, 울혈성 심부전과 기타 합병증으로 투병하고 있었죠. 콕스의 별세는 그를 해고했다가 다시 고용하기도 했던, 브레이브스의 오랜 구단주 테드 터너가 사망한 지 며칠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아내 팸과 8명의 자녀를 유족으로 남긴 콕스는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났고, 캘리포니아 센트럴 밸리의 농업 지역에서 자랐습니다. 인생의 후반기를 애틀랜타에서 보냈는데, 그곳에서 브레이브스 감독으로 25시즌, 단장으로 5시즌을 지내며 시가를 피우고 심판에게 호통을 치는, 아버지 같으면서도 결국 할아버지 같은 남부 스포츠의 상징이 되었죠.

콕스는 또한 브레이브스에서 보낸 기간 사이인 1982~1985년까지 4시즌 동안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감독을 맡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애틀랜타에서 자신를 거쳐 갔던 그 어떤 명예의 전당 선수들만큼이나 브레이브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어요.

​콕스가 감독을 맡는 동안 브레이브스는 사상 유례가 없는 14회 연속 지구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90년대에 5차례 NL 우승 및 1995년에는 월드시리즈까지 제패했는데, 이는 2021년 제자인 브라이언 스닛커의 지휘 아래 다시 우승하기 전까지 애틀랜타 시가 얻은 유일한 프로 스포츠 우승 타이틀이었죠.

콕스는 선수 중심 감독의 전형으로 여겨졌으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압도적 1위인 162회의 퇴장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이게 항상 감독님이 자신들의 편에 서 준 증거라고 말했어요. "제가 경기장에 있다면 나를 옹호해 주는 감독을 원할거에요. 때때로 선수들이 완전히 틀려서 고함을 치며 난동을 부릴 때도 있겠지만, 감독이라면 선수들을 옹호해야 합니다. 선수들은 그런걸 고마워하거든요." 과거 콕스가 이렇게 말한적이 있습니다.

스몰츠의 브레이브스 명전 입성 행사에 함께한 콕스(게티이미지)

콕스는 2010시즌을 마친 후 메이저리그 4위에 해당하는 2,504승의 기록을 남기고 은퇴했습니다. 그는 BBWAA가  선정하는 올해의 감독상을 4회(내셔널리그 3회, 아메리칸리그 1회) 수상했으며, 스포팅 뉴스로부터는 역대 최다인 8회의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어요.

후보 자격을 얻은 첫해에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콕스는 2014년에 입성했는데, 같이 헌액된 이들중에는 감독 재임 시절 '삼총사' 투수진의 일원이었던 톰 글래빈과 그렉 매덕스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 뒤에는 존 스몰츠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죠.

"항상 어떤 면에선 감독님이 저에겐 두 번째 아버지 같았다고 말해왔습니다. 감독님으로부터 야구에 대해-즉 업무를 수행하는 법, 좋은 팀 동료이자 팀의 일원이 되는 법- 배웠어요. 이 모든 것을 다른 누구보다 감독님께 더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감독님에 대해 항상 말씀드렸던 것 중 한 가지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감독님께서 우리 선수들을 위해, 그리고 경기장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판정을 끌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는 점이에요. 감독님께서 정말로 선수들이 그가 얼마나 자신들을 아끼는지 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글래빈이 말했습니다.

"그 때문에 매일 야구장에 감독님을 위해 열심히 뛸 준비를 하게 되었어요. 감독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그런 분위기와 환경을 잘 만드시는분이었어요. 그리고 여러번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부진한 경기를 했을 때는 스스로의 경기력에 화가 나는 동시에,  감독님을 실망시켰다는 자책감이 뒤섞이곤 했습니다." 그가 덧붙였습니다.

바비 콕스의 부고를 전하는 브레이브스 구단 (X)

한때 3루수 유망주였던 콕스는 1968년~1969년 뉴욕 양키스에서 눈에 띄지 않는 두 시즌을 보낸 후, 만성적인 무릎 문제 때문에 선수 생활을 일찍 마감했습니다. 그는 30세의 나이로 양키스 산하 마이너리그 감독이 되었으며, 1977년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양키스에서 빌리 마틴의 1루 코치로 한 시즌을 보낸 뒤, 불과 36세였던 1978년에 브레이브스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뉴욕 시절 콕스는 미키 맨틀, 서먼 먼슨의 팀메이트였으며, 랄프 후크 감독 밑에서 뛰었고, 마틴과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 밑에서 일했습니다. 애틀랜타에서는 터너 구단주와 일하고 행크 애런과 함께 협력했으며, MVP들과 명예의 전당 선수들을 지도했죠.

​콕스는 파업으로 단축된 1981시즌 이후 브레이브스 감독직에서 해고되었습니다. 이 조치는 당시 성미가 급한 터너 구단주가 기자로부터 후임자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콕스와 정확히 똑같은 사람일 것이라고 대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뤄졌었어요.

​브레이브스에서 해고된 직후 토론토 감독으로 임명된 콕스는, 네 시즌 중 세 시즌 동안 블루제이스를 5할 승률 이상으로 이끌었고 한 차례 지구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 이후 애틀랜타 단장으로 재영입되었죠. 그는 1985년 10월부터 1990년 10월까지 그 직책을 맡으며 1990년대 프랜차이즈 부흥의 기초를 다지는 일을 했었어요. 당시 치퍼 존스, 스티브 에이버리, 마크 월러스, 라이언 클레스코, 켄트 머커 등 미래의 주역들을 드래프트하고, 스몰츠와 찰리 라이브란트를 트레이드해 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브레이브스 그 자체 (게티이미지)

하지만 콕스는 메이저리그 감독으로서 보낸 거의 30년의 세월, 특히 애틀랜타 프랜차이즈 역사상 그 누구보다 많은 경기를 유니폼을 입고 소화한 브레이브스에서의 25년으로 기억될 거에요.

"바비는 가장 품격 있는 방식을 사용하는 사나운 경쟁자였습니다.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시도하곤 했죠." 2014년에 함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동료 감독 토니 라 루사가 말했습니다.

콕스가 브레이브스의 지휘봉을 잡았던 수십 년 동안, 옛 풀턴 카운티 스타디움의 홈팀 더그아웃이나 터너 필드 홈 더그아웃 옆의 작은 방에서 풍겨 나오는 시가 연기 냄새는 익숙한 일이 되었습니다. 기상 레이더 센터로 설계되었던 그 작은 방은 해바라기 씨 통과 미니 냉장고가 있는 '바비의 방'이 되었고, 콕스는 그곳에서 유니폼을 입고 항상 스파이크를 신은 채 씨앗을 씹으며 옛 선수들, 기자들, 원정팀 감독들, 그리고 '스키퍼'에게 인사하러 온 연극 및 영화계 유명인들과 이야기를 나눴어요.

콕스가 명예의 전당에 선출된 후, 오랜 브레이브스 투수 코치였던 레오 마조니는 "바비와 함께 보낸 16년은 제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었으며, 그 유일한 이유도 바비 콕스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치퍼와 함께 (게티이미지)

치퍼 존스는 1994년 스프링캠프 막바지에 왼쪽 무릎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되었을 때의 기분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 부상으로 1990년 전체 1순위 지명자였던 그는, 원래대로라면 신인왕 경쟁을 벌여야만 했던 시즌 전체를 날려야만 했죠. 당시 십자인대 수술은 10년 뒤만큼 발전하지 않았고, 재활도 혹독했습니다.

​"제가 다시 예전과 같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정말 알 수 없었죠. 하지만 한 사람만이 저를 끝까지 믿어주셨습니다., 절대로요. 그 분이 바로 바비 콕스 감독님이셨습니다."  2018년 명예의 전당 연설 당시 무대 근처에 앉아 있던 콕스를 바라보면서, 존스가 한 말입니다.

내셔널리그 MVP를 두 번 차지한 브레이브스의 전설 데일 머피는 1981년까지 콕스 밑에서 첫 4시즌을 풀타임으로 뛰었습니다. 비록 그 기간 팀 성적이 4위 이상 올라가진 않았지만, 머피는 그럼에도 콕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이는 이후 수십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은퇴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머피는 유타주 집에서 브레이브스 스프링캠프까지 찾아와서 콕스와 대화하는 것을 즐겼죠.

"초반부터 감독님이 훌륭한 리더라는 것을 알았어요. 비록 실력 있는 팀이 아니라서 결과가 잘 나타나지는 않았지만요. 재능이 없으면 매우 힘들지만, 감독님은 우리가 그를 사랑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감독님을 위해 뛰는 것을 사랑했어요. 보세요, 감독님은 그 기록을 세우기 훨씬 전부터 심판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1978년에도 그러고 있었어요. 제 말은, 그때부터 심판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는 겁니다." 머피가 말했습니다.

스몰츠에게 있어서, 바비 콕스는 아버지와도 같았습니다 (게티이미지)

​단장으로 브레이브스에 복귀한 후 콕스는 일련의 영향력 있는 조치를 취했는데, 존스를 드래프트하거나 1987년 8월 스몰츠를 트레이드해 온 것보다 더 큰 일은 없었습니다. 브레이브스는 플레이오프 경쟁 중이라 검증된 선발 투수가 필요했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베테랑 투수 도일 알렉산더를 보내고, 더블A 투수 유망주 스몰츠를 데려왔었어요.

스몰츠는 브레이브스에서 20시즌을 보내며 통산 213승 중 211승을 거뒀고, 154세이브 전부를 애틀랜타에서 기록했습니다. 콕스가 명예의 전당에 선출된 후 스몰츠는 "감독님의 작은 부분이 저를 야구 선수로 변화시켰습니다. 함께한 20년이 제 인생을 바꿨어요."라고 말했죠.

콕스는 스몰츠가 커리어 초반 고전할 때 그를 지지해 준 감독이었습니다. 스몰츠가 팔꿈치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경쟁을 계속하겠다고 고집했을 때, 그것이 통증을 줄이기 위해 팔 각도를 바꾸고 결국 불펜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더라도 끝끼지 말을 경청하고 함께 노력했죠.

​"충성심은 맹목적일 수 있지만 누군가를 믿고, 그를 믿어주고 할 수 있는 일을 할 기회를 줌으로써 그 사람이 그 지점에 도달하도록 도울 때 특별한 유대감이 생깁니다. 감독님이 우리 모두에게, 특히 저에게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에 관한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본인 인식을 통해 그런 유대감을 심어주셨다고 생각해요." 최근 스몰츠가 말했습니다.


(Part2로 이어집니다)